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타 아르헤리치 (문단 편집) == 여담 == * [[재즈]]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는 스승 [[프리드리히 굴다]]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유튜브]]로 재즈 영상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다만 재즈 피아노 연주도 한번 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에는 한사코 거절한다고 한다.[* 재즈와 클래식을 섞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협연할 일정까지 잡아놓은 적이 있으나 마르타답게 직전에 취소했다고 한다.] * 건반을 칠 때의 힘이 대단하다! 이는 현재 82세로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여전하다. 1994년 내한했을 때 한 번 줄을 끊어먹은 일화는 이미 유명한 편. * 연주를 자주 취소하기로 유명하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최상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컨디션이나 상황이 아니면 연주를 하지 않으려는 것. 그래서 신인 피아니스트들이 아르헤리치 대타로 뛴 연주회에서 의외의 기량을 발휘해 유명해지는 순기능(?)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유자 왕]].] * 의외로 '''절대음감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은 연주를 끝나고 관객이 "전주곡 사장조 아주 좋았어요!"라고 했는데 방금 자기가 친 전주곡들 중 뭐가 사장조인지 생각해 내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 젊었을 적 어머니의 입김으로 [[지휘]] 레슨도 몇 번 받았지만 자신의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했다고 한다. * 1990년대에 암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다. 치료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악성 흑색종(malignant melanoma)에 걸렸는데 수술을 받았으나 다시 재발하여 재치료를 받는 등 상당히 힘든시기를 보냈다. 다행히 완치되어 2016년 현재 재발하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암을 완치받았다고 한다. * 골초로도 유명하다. 암수술을 받고 나이가 들면서 좀 줄였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줄담배를 피워댔다고 한다. 최근에는 폐 수술을 받아 금연 중이라는 소식도. * 독주 무대에 관하여 '외롭고 공허하다' 하여 협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협연 위주로 공연을 한다. * 2013년도에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첫 듀오 콘서트로써 한국을 찾으려다 취소되었다. 지병인 저혈압으로 인해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 결혼은 3번 했으며 현재는 싱글이다. 젊었을 적 중국 출신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로버트 첸이라는 사람과 결혼하였다가 이혼했고, 1969년에 지휘자 샤를 뒤투와와 결혼했고 4년 후 결별했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이때 뒤투아의 외도 상대는 [[정경화]]였다. 아르헤리치 말로는 뒤투아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이혼 후에도 현재까지 전 남편과 쿨하게 지휘자-협연자의 관계로 연주를 자주한다.] 1970년대 말에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세비치와 결혼하였고 현재는 이혼한 상태이다. 3명의 전남편과 각각 1명씩의 딸을 낳았는데 둘째 딸과 셋째 딸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길렀다. 첫 남편에게서 낳은 딸 리다 첸-아르헤리치는 비올리스트로, 2번째 남편에게 낳은 아니 뒤투와는 음악 저널리스트, 3번째 남편에게서 낳은 스테파니 코바세비치는 사진작가로 활동중이다. * 주연으로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는 셋째 딸 스테파니 코바세비치가 감독, 나레이션을 맡았다. 피아니스트, 엄마, 아내로서의 세 모습을 딸의 시각으로 따뜻하게 담아냈다. 2012년 개봉. *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자신이 주목하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중간에 탈락하자 강하게 항의하고 위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해당 대회 우승자는 베트남의 '[[당 타이 손]]'. [* 이 때문에 당타이손의 연주가 우승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뛰어난 연주를 보였지만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탈락하자 아르헤리치가 이 결과에 납득하지 못해 사퇴한 것일 뿐이고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당타이선의 연주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에 당타이선이 지속적으로 발탁되는 것을 보면 쇼팽 협회도 그를 충분히 인정하였고 실제로 그가 발매한 쇼팽 CD들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그가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2016년 6월 5일에 75살 생일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니 극장에서 절친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콘서트를 열었는데, 오케스트라의 생일축하 연주와 함께 당시 관객들에게 케이크를 돌렸다는 유쾌한 일화도 있다. * 2002년 막 주목받던 신인 [[임동혁(피아니스트)|임동혁]]을 눈여겨 보고 데뷔 음반을 낼 수 있도록 후원한 적이 있다. 이들은 1997년에 첫 만남을 가진 이후로 2022년 현재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둘의 나이 차이는 '''43세'''이다. 그야말로 나이를 초월한 우정. * 2019년 5월 7일 '2019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의 공연을 위해 9년 만에 내한하였다.[* 임동혁 또한 함께했다.] [[분류: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분류:고전 음악 연주자]][[분류:1941년 출생]][[분류: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